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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도구로써 민족주의(Nationalism as a tool for politics)역사 = 기록 2020. 10. 21. 11:28
민족주의 그 자체는 정치의 목적으로 사용된적이 없으며 항상 정치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왔다. 흥미로운 것은 민족주의가 다른 국가에선 우익의 전유물인 반면에 한국에선 좌익의 도구라는 점이다. 민족주의를 가장 잘 활용한 정치인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당연히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를 꼽는다.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역시 민족주의를 파시즘의 도구로 사용했다. 정치적 스펙트럼을 봤을 때 민족주의는 파시즘으로 이어지고 파시즘은 우익의 극단이라는 점에서 민족주의가 우익의 도구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타당한 이야기일 수 있다. 최근에 민족주의를 사용해서 정치적 승리를 거둔 인물을 꼽으라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있을 수 있다. 그가 직접적으로 민족주의를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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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와 애덤 그랜트 "오리지널스"리뷰 = 소회 2020. 10. 20. 14:01
“You do not fear death. You think this makes you strong. It makes you weak. How can you move as fast as possible, fight longer than possible without the most powerful impulse of the spirit—the fear of death.” "당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롯이 당신을 약하게 만들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동력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어떻게 당신이 가능한한 최대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며, 오랜 시간동안 투쟁할 수 있겠는가."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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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은 아직 있다.인물 = 모델 2020. 10. 20. 13:45
맥도널드는 단순히 햄버거 가게가 아니다. 이제 맥도널드는 산업화의 상징이자,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소련이 붕괴되기 직전에도 맥도널드는 소련에 침투해 있었고, 중국이 시장을 개방할 때도 제일 먼저 중국에 가 있었다. 전 세계에 3만여개의 매장이 있고, 매일마다 7천만명이 맥도널드의 햄버거를 먹는다. 하지만 이런 프렌차이즈 제국을 설립한 사람은 맥도널드 형제가 아닌, 그들의 경영 방식에서 성공 가능성을 본 50대의 아저씨 레이 크록(Ray Kroc)이다. 레이 크록은 밀크 쉐이크 기계를 판매하는 일을 해왔고, 맥도널드에도 기계를 팔러 갔다가 맥도널드 형제가 식당을 운영하는 방식에 큰 충격을 받고 그들에게 또 다른 체인점을 낼 것을 제안한다. 그 때 크록의 나이는 52세다. 사실 이러한 일이 한국이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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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형 친일파. 윤치호와 박중양역사 = 기록 2020. 10. 5. 14:53
'친일파'하면 생각나는 이완용은 사실 굉장히 기회주의적인 면모가 강했고. 이완용을 제외하더라도 을사오적으로 불리는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은 일본에 겁을 먹었거나 일본이 제공해줄 부귀영화 때문에 친일을 했다고 봐야한다. 뭐, 그런 인물들은 비판 받아야 마땅한 인물들이라고 본다. 을사오적이 대한민국을 팔아넘긴게 아니라, 아예 근본부터 다른 국가인 대한제국을 팔아넘긴 것이긴 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개인의 이득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이니 욕 먹어도 싸지. 하지만 나름대로 신념형 친일파로 불리는 윤치호나 박중양의 경우엔 이를 다르게 봐야한다고 본다. 그리고 역사 교과서에서도 이들에 대해선 좀 다뤘음 좋겠다고 생각한다. 신념형 친일파는 어떤 부류냐면. 단순히 일본제국이 주는 부귀영화 때문에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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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패션계의 거인, 에디 슬리먼(Hedi Slimane)패션 = 센스 2020. 9. 8. 15:31
"근육질인 남자는 다 벗고 다니는게 낫다. 남자도 슬림해야 옷을 이쁘게 입을 수 있다." 남자 패션을 이야기 할 때 절대로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디자이너인 에디 슬리먼(Hei Slimane)이다. 어렸을 때부터 의상실을 하던 어머니에게 큰 영향을 받았던 그는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루이비통과 입생로랑을 거쳐서 전 세계 최고의 명품 회사인 디올 하우스(Dior Hous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들어가게 된다. 2001 FW부터 2007 FW까지 디올에 몸담으면서 그가 보여준 패션은 당시에 패션계를 발칵 뒤집게 되는데. 기존에 남성성을 강조하던 큼지막한 패션을 거부하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키니 실루엣'을 디올 옴므 패션 전반에 밀어넣으면서 그 때 부터 남성들도 스키니진과 타이트 한 옷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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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던 바보, 이브 생 로랑.패션 = 센스 2020. 9. 3. 11:41
21살에 그 유명한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됐고. 26살의 나이에 그의 이름을 딴 ‘YSL’ 이브 생로랑을 런칭했다. 그 이후로 그는 파리 패션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남자가 디자인 하는 여성패션. 더 자세하게 말하면 게이 남자가 디자인 하는 여성의 패션은 매번 충격적이었다. ⠀⠀⠀⠀⠀⠀⠀⠀⠀⠀⠀⠀⠀⠀⠀⠀ 여성들이 추구하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벗기고, 처음으로 젠더리스(genderless)한 시도를 했던 디자이너다. 여성에게 입힌 턱시도인 ‘르 스모킹’은 그가 죽을 때까지 아끼던 작품이다. ⠀⠀⠀⠀⠀⠀⠀⠀⠀⠀⠀⠀⠀⠀⠀⠀ 그런 생로랑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다.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수 백 벌의 옷을 탄생시키는 그의 모습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여러 남자들과 몸을 섞으며 마약을 하고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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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로 현대차의 새로운 제네시스(기원)를 만들다인물 = 모델 2020. 7. 10. 09:50
아시다시피 정주영 현대 초대회장의 자식 복은 많은 편이 아니다. 장남인 몽필은 젊은 시절 사고로 죽고, 자신이 현대그룹을 물려주려 했었던 5남 몽헌은 2002년 대북송금 비리로 엮여 자살을 했다. 4남 몽우는 우울증을 앓다가 음독 자살을 했다. 자신의 운은 만들어서까지 기적을 만들었던 정주영이지만, 자식들의 운은 천하의 그도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자식들이 일찍 죽게 된 탓일까, 정주영의 손자 사랑은 지긋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장남 몽필이 죽고서 차남 몽구의 자식인 의선은 정주영 회장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한다. 정씨 가문은 매일마다 아침을 함께하는 일종의 전통이 있었는데, 그 때 마다 정주영 회장은 장손 의선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고, 그 때 마다 “의선이 녀석은 나중에 요직에 앉혀라, 큰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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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는 생각들삶 = 고통 2020. 7. 10. 09:24
1. 혁명 보다는 행복: 예전의 나는 내가 무슨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인줄 알고서 살았다. 마이클 잭슨을 보고 가수의 꿈을 꿨었고, 스티브 잡스를 보면서 경영자의 꿈을 꿨었다. 레이건을 보고 정치인의 꿈을 꿨었고, 론 폴을 보며 혁명가의 꿈을 꿨었다. 물론 이 인물들이 나에게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 그릇과 역량이 그정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타인의 비방과 비난을 버틸 수 있는 멘탈도 없을 뿐더러, 사업에 인생을 걸 배짱도 없고, 현실을 부정하며 이상을 외칠 포부도 없다. 내 주제에 맞게 벌 만큼 벌어서 살 만큼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물론 이 '벌 만큼 번다'라는 개념이 일반적인 사람들 보다는 좀 높을 수도 있겠다.)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