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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항공의 모태를 확립한 기업인, 조중훈.
    카테고리 없음 2020. 12. 2. 09:41

    자식 농사에 성공한 이병철 회장과 달리, 자식 농사를 망친 기업가들이 많다. 정주영 회장도 망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만큼 또는 아버지 이상의 역량을 가진 2세를 키워내지 못했다.

    그래도 정주영 회장 정도면 양호한 편, 내가 보기엔 자식 농사에 실패한 대표적인 기업가가 바로 한진그룹의 조중훈 회장이다.

    그 덕분(?)에 지금은 조현아와 조현민 사태로 대표적인 ‘갑질기업’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한진그룹이지만, 그들의 조부였던 조중훈 회장은 절대로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조중훈 회장의 사업은 1945년 광복직후 화물 운송업이 필요할 거 같다고 느껴 한진상사를 설립한 것으로 시작하였다.

     


    당시에 생필품들을 해외에서 수입해서 사와야 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운송업에 대한 수요를 늘릴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운송업에 대한 수요증가는 한진상사를 설립된지 5년만에 트럭 30여대와 화물선 10여척을 보유한 회사로 만들었다. 시대적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대한 수요를 예측한 조중훈 회장의 탁월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진상사의 본사가 있던 인천은 폐허가 되고 이내 사업 자체도 위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위기에도 기회를 찾아내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라 했던가, 조중훈 회장은 미군의 물자를 수송하는 사업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미군과의 계약을 추진하기로 한다.


    물론 계약을 추진하는 당시에도 문제점은 존재했는데, 그건 바로 당시의 한국인들의 마인드였다. 한국인들은 당시에도 그놈의 선천적인 폰지맨 기질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중훈 말고도 많은 한국인 사업가들이 미군과 운송계약을 맺었지만, 미군의 물자를 받아서 운송을 해주기는 커녕 중간에 가지고 빤스런을 해버리기 일수였다. 미군들이 이 더러운 폰지맨들을 신뢰할리 만무했다. (이 때 부터 한국은 먹튀의 상징이었다. 이 국가 국민들에게 블록체인을 하자고 하니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

    이 때 조중훈 회장은 운송도중에 사고가 발생한다면 모든 비용을 자기가 부담하겠다는, 당시엔 비교적으로 파격적인 계약을 제시해서 미군의 군수물자 운송사업을 따오게된다.

    하지만 조중훈이 폰지맨이 아니라고해서, 그 부하직원이 폰지맨이 아니라는 법은 없다. 조중훈은 약속했지만, 운송기사는 물품을 남대문 시장에 빼돌려 몰래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미군 물품 담당자가 너무 흑우였다는 것. 분명히 운송기사가 물품을 빼돌렸음에도, 제대로 들어왔다고 체크를 하였다.


    조중훈 회장 입장에선 모른 척 하더라도 손해볼 것이 없는 입장이었지만, 직원들을 풀어서 남대문 시장에 팔린 물품들을 다시 사들이고, 미군에게 건내주었다. 도의적인 책임을 느꼈다는 것이다.

    한진상사는 이로인해 많은 손해를 입었지만, 손해라고 하기도 뭐한것이 이 사건으로 조중훈은 미군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진상사는 미군의 운송계약을 거의 독점적으로 따오게 되고, 이는 한진상사가 사업을 확장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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